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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는 행복지수가 높다는데..

중남미

by 쪼리아빠 2023. 2. 1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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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스페인어를 배우게 되었고, 스페인어가 사용국가에서는 영어에 이어 2위, 사용인구에서는 중국어에 이어 2위로, 의외로 그 잠재력이 매우 높은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이 모두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이며, 포르투갈어 역시 스페인어와 매우 유사하여 배우기에 어렵지 않으므로, 미래에 중남미의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에 대한 수요도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에 동의할 수 있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들. 미국도 스페인어가 제1외국어로 사용된다.

하지만, 중남미에서 자주 들었던 얘기는 중남미가 성장잠재력이 1위로 평가된 지가 아주 오래되었지만, 늘 잠재력만 1위였지, 실제로 그 잠재력이 발휘될 날이 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15년 이상 중남미 여러 국가에서 무역관에 근무하다보니, 그러한 얘기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중남미의 산업구조가 과거의 산업에만 집중하면서 첨단산업을 도입하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첨단산업이 부진한 것은 학생들이 최신기술을 교육받지 못하기 때문이고, 교육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단어가 크리오요이다. 토지와 같은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지배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오요는 기존의 전통적인 산업에만 관심이 있고, 은행이나 통신과 같이 어쩔 수 없이 최신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경우에는 자체투자를 하기보다는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기업으로부터 들여오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최신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도 없고, 이것을 가르쳐줄 학교도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필자는 이게 계층간 사다리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 가장 먼저 꼽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이민자라 할지라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사회가 이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 이를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중남미에서는 좀처럼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레바논에서 멕시코로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까를로스 슬림이 중남미 최고의 부자가 된 것과 같은 사례도 있고, 볼리비아에서 인디오 출신인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도 있다. 하지만, 중남미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인디오들은 제대로 된 교육 조차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평생 극빈층으로 사는 것이 훨씬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남미에서는 돈을 벌지 못해서 굶어죽었다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단 기후 자체가 사시사철 상춘기후인 곳들이 많다. 또, 신대륙의 옥수수와 감자는 구대륙의 밀이나 쌀보다 훨씬 수확량이 높고, 그래서 매우 싼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또 대부분의 나라에서 석유가 나오기 때문에 주유소에서의 판매가격도 매우 낮은 편이다. 중남미에서 시위가 발생하는 경우는 예전의 군부독재로 인한 경우는 매우 예외적이고, 옥수수나 휘발유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비교적 잘 산다고 하는 칠레에서도 2019년 시위의 원인은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많은 중남미 국가들은 식품가격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통제를 하고 있다. 또 극빈층에 대해서는 생필품 바구니라고 해서 기본 식량을 배급하는 나라도 많다. 그만큼 식량 문제에 대해서는 정권 유지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부자가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굶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풍족하게 누리지는 못하지만, 모든 국민이 싼 가격에 휴대폰을 들고 다닐 수 있고, 20년된 자동차를 몰아도 기름값이 부담이 되지 않는 나라. 유럽식 노동제도가 도입되어, 매년 한 달씩 휴가를 즐기면서도 급여를 받을 수 있고, 노동자에 대한 해고도 어려우며, 노동집약적 산업이 대부분이라 항상 일자리가 넘치는 나라. 카톨릭이 국교라서, 정작 성당에 나가본 적은 평생 5~6번에 불과하지만, 모든 성인들의 기념일마다 휴일이고, 부활절과 카니발같은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나라. 뭐 이 정도면 풍요롭지는 않지만,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행복의 이면에는 빈곤층이 반발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사회 시스템이 있고, 중남미의 자연환경은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적합한 기후와 자원을 제공해주고 있다. 지배층들은 이걸 이용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간혹 이런 시스템이 제공하는 기본적인 생활보장수준을 좀 더 높여주기 위한 정치적 행위를 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데, 이를 우리는 포퓰리즘, 포퓰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포퓰리즘의 시초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 그 성패의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중남미 최초의 친서민정책이었음은 확실하다.


물론, 이런 포퓰리즘은 정치인 뿐만 아니라 그 단맛에 빠져서 올바르지 않은 선택을 한 국민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른다면, 중남미의 빈곤층들은 이제 겨우 1단계 생리적인 욕구를 채운 상태인데, 그들에게 바로 5단계의 자아실현 욕구를 요구한다는 건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중남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2가지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다음 장부터는 여러 국가에 근무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중심으로 더 깊은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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