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길었던 베네수엘라 경제에 대한 얘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석유 자체는 축복이 맞다. 석유가 없었다면, 베네수엘라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석유 외에는 다른 대안이 필요없을 정도로 너무 석유에만 의존했기에, 국제유가의 하락이라는 변수 앞에서 너무 무력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문제라고 할 것이다. 최근 중동지역의 산유국들에서 석유 이후의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 2030처럼 여러 투자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석유로 인해 쉽게 얻어진 부를 둘러싸고, 많은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데만 몰두하는 모습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라고 크게 다를 바는 없다. 한국기업들이 2000년대 베네수엘라에 몰려들었던 것은 높은 소득을 바탕으로 고급 가전제품을 사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베네수엘라 소비시장을 탐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외국기업들이 떠난 자리에 우리 기업들이 들어가려고 노력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를 두고 그 평가는 여러가지로 갈린다. 사회주의 포퓰리즘이 경제위기의 원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미국의 경제제재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차베스-마두로 정권은 겉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였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포기한 적도 없다. 정부는 사회주의 성향의 정책들을 내놓으면서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계획경제를 시도한 적은 없고, 오로지 석유산업에만 매달린 바람에 경제구조를 바꾸는 데에는 실패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베네수엘라의 정책입안에는 쿠바가 많은 역할을 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제재 상황에서 경제를 이끌어갔던 경험을 베네수엘라에 전수해 주었다. 하지만 경제규모도 다르고, 산업구조도 다르고, 결정적으로 이권을 둘러싼 여러 경제주체들의 개입에 대해서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쿠바의 외환시장은 개입할 가치가 없었지만, 베네수엘라의 외환시장은 엄청난 부의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진 세력들이 많았다는 게 가장 큰 차이일지도 모른다.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정부는 지금의 경제파탄이 자신들의 무능과 포퓰리즘 때문이 아니라 엄청난 부에 관심을 가진 미국과 석유 메이저, 베네수엘라의 기존 정치세력들이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시도는 존재했다. 그런 시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게 아닐까? 하지만 결론적으로 베네수엘라 정부가 그런 시도들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실패에 대한 댓가는 베네수엘라의 국민들이 지고 있다.
최근 베네수엘라는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정부의 공식환율제도를 포기하고, 거의 달러화 통용정책으로 돌아선 상황이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공식환율제도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은 갑자기 수입생필품의 가격이 폭등하면 서민들과 군부의 지지를 잃게될까 두려웠기 때문인데, 어찌보면 기득권 세력이 경제 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식환율, 고정환율의 포기는 단기적으로는 물가폭등의 상황을 가져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환치기나 재정거래, 밀수와 같은 비정상 대신 생산성 회복, 수출 증대와 같은 정상적인 과정으로 돌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남미 경제의 가장 큰 고질병인 외화 유출에 대해서는 딱히 뾰족한 수가 없어보인다. 중남미의 경제적, 정치적 불확실성은 창출한 수익을 다시 재투자하는 것을 가로막는 주범이다. 다행히 베네수엘라는 국가가 수익을 독점하는 구조이고, 석유라는 확실한 수입원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므로, 수익의 재투자를 통한 산업다각화가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베네수엘라의 문제는 베네수엘라 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의 이중환율제도와 그로 인한 경제파탄을 똑같이 따라하는 나라가 또 있다. 아르헨티나다. 이중환율제도를 고집하다가 결국 암시장환율이 먼저 뛰어오르고, 그로 인해 정부의 공식경제통로는 마비가 되고, 이때문에 달러가 부족해지자 다시 암시장환율이 오르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그래도 아르헨티나는 자급자족으로도 버틸 수 있는 산업기반을 가지고 있어서, 수입을 하지 않아도 서민들의 삶이 궁핍해지지는 않아서, 예전의 베네수엘라처럼 관심을 끌지는 않는 듯 하다. 가진 것이 많아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도 굶어죽지는 않는 것 같다.
쿠바의 사회주의 정권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에트 해체 이후, 쿠바는 기댈 수 있는 동맹을 찾았고, 차베스는 쿠바의 경제에 든든한 지원자였다. 베네수엘라는 쿠바의 의료진을 받아들여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반대급부로 쿠바에 원유를 제공했다. 쿠바는 베네수엘라로부터 받은 원유를 정제하여 국내에서 사용하는 한편, 잉여분은 해외로 수출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경제파탄은 쿠바 경제에도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쿠바가 해외수입대금 결제가 늦어진 시기가 차베스의 사망시기와도 겹치는 듯 하다.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 모두 한 때 세계 GDP 순위에서 5위까지 올라갔던 부국이었다. 시대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기존의 산업에만 매달렸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배워야 할 타산지석의 교훈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기술 개발과 새로운 산업의 발굴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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