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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음식문화

중남미

by 쪼리아빠 2023. 3. 2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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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못들어본 사람이 더 많을 것 같긴 하지만, 페루는 마추픽추라는 세계적인 관광유산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매년 미주대륙의 꼭 가봐야 하는 식당 Top 10에는 페루의 식당이 꼭 들어가고, 중남미 식당 Top 50에는 10개 이상의 식당이 명단에 들어갈 정도이다. 페루 관광청은 페루 관광의 이유 중 하나로, 페루의 미식문화를 홍보하고 있다. 

 

페루는 고급식당 뿐만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 식사를 해도 맛이 없는 집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맛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 페루의 음식문화가 다른 중남미와도 차별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는 일단 식자재가 풍부하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될 것이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같이 대서양권 국가들의 경우는 유럽의 음식문화 영향을 받아서 밀과 소고기가 주식처럼 되어있다. 사탕수수, 대두, 오렌지, 야자와 같은 다른 작물도 재배하지만, 안데스처럼 다양하지는 않다. 페루는 감자의 원산지답게 감자의 종류 만도 3,000개가 넘는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옥수수도 우리가 흔히 아는 알이 많은 옥수수 뿐만 아니라 초끌로 Choclo 라고 불리는 알이 큰 옥수수도 즐겨먹는다. 슈퍼푸드 중 하나로 꼽히는 퀴노아도 즐겨먹는 작물 중 하나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작물들이 재배되는 데, 이는 잉카문명의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안데스 산맥을 기반으로 한 잉카제국은 고도에 따라 재배하는 작물을 달리하여, 작물의 재배량을 크게 늘림으로써 제국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감자의 원산지인 페루에는 3,000개가 넘는 종류의 감자가 있다고 한다.

 

수산물 역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페루 앞바다는 안쵸비, 오징어 등에서 세계 최대 어장 중 하나이다. 이처럼 많은 어획량을 가능한 것은 적도에 가까운 페루 앞바다가 적도해류와 남극 한류가 만나는 지점이라서, 다양한 어종이 서식이 가능한 데다가, 남극 한류(훔볼트 해류라고 부른다)가 바다의 바닥을 훑어주면서, 영양분이 위쪽으로 올라와 플랑크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수중에 부유하는 플랑크톤 때문에 멸치과의 안쵸비 anchovi, 크릴새우와 같은 작은 어류가 번성하였고, 이를 주식으로 하는 대형어류와 물개 같은 바다포유류, 펭귄 들도 페루 해변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페루 태평양 연안의 Ballesta섬은 가마우지 새똥이 산을 이루고 있다.

 

가마우지와 같은 조류들도 무리를 이루어 사는 데, 이 가마우지의 배변이 바로 구아노 guano 다. 질소화합물과 인산염이 풍부한 구아노는 암모니아를 이용해 제조하는 화학비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가장 품질이 좋은 천연비료로 각광을 받았고, 한 때 이를 둘러싸고 국가 간의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페루의 태평양 연안은 가마우지 등 조류의 먹이가 풍부하면서도 1년 내 비가 오지 않는 사막성 기후를 필요로 하는 구아노의 생성조건에 딱 들어맞는 지역이다. 

 

페루의 대표적인 음식인 세비체 Cebiche 는 바다나 아마존 강에서 잡히는 생선을 날것으로 회처럼 토막을 내고, 여기에 레몬즙, 양파, 고추, 소금을 넣어 버무린 음식으로, 고구마, 옥수수, 샐러드를 곁들어 먹는다. 

 

Ceviche. 날생선을 레몬즙으로 삭혀서 먹는다.

 

페루의 수산업 중 안쵸비를 이용해서 만드는 어분은 단백질의 비중이 매우 높은 훌륭한 식재료로, 가축의 사료에 첨가제로 주로 활용되며, 각종 식자재의 단백질원으로도 이용된다. 페루 앞바다의 수온이 평소보다 더 높아지는 엘니뇨 El niño 현상이 발생하면 안쵸비의 어획량이 급감하게 되고, 이는 사료가격의 상승 등으로 이어져 전세계 경제에도 큰 영향을 준다. 

 

페루 미식문화 발달의 두 번째 요인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음식문화와의 융합이다. 페루에 아시아인의 유입 역사는 오래되었다. 중국은 청나라 시절인 1850년대부터 사탕수수 농장, 구아노 채굴, 철도 건설 등을 목적으로 10만 명 이상의 노동자를 페루로 보냈다. 일본 역시 메이지유신 당시 빈농들을 10만 명 이상 페루로 이주시켰는 데, 1990년대에는 일본계 페루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대통령에 당선된 적도 있을 정도다.

 

Lomo Saltado. 간장으로 간을 한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페루 음식에 다양한 소스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간장이 대표적이다. 페루에는 중국식당이 참 많다. 중국식당은 치파 Chifa 라고 부르고, 중국식 볶음밥은 차우파 chaufa 라고 부른다. 각각 吃飯(식사), 炒飯(볶음밥)을 뜻한다. 일본계 이민자들은 페루 음식문화에 MSG를 알려주었다. 현지에서는 브랜드명인 아히노모또 Ajinomoto 가 고유명사처럼 쓰인다. 원래 페루에는 잉카제국의 영향을 받아 고추를 이용한 소스가 발달했는 데, 여기에 간장과 MSG를 더해 단맛과 감칠맛이 더해진 특유의 매콤한 소스가 바로 아히소스 Salsa de Aji 로, 거의 모든 음식에 이를 뿌려서 먹을 정도로 페루 음식문화의 발달에 큰 기여를 했다. 

 

Aji de Gallina. 노란색 소스가 Salsa de Aji로, 닭고기와 버무러져 있다.

 

세 번째 요인은 뛰어난 요리사들의 활약이다. 1967년생인 Gaston Acurio는 아버지가 건설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처음에는 마드리드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이후 적성을 찾아 프랑스 파리의 꼬르동 블루 요리학교로 진로를 바꿨다. 파리에서 만난 독일인 Astrid Gutsche와 결혼 후, 1994년에 페루로 돌아와 Astrid & Gaston 이라는 식당을 열게 된다. 처음에는 전통 프랑스 식당이었으나, Gaston이 페루식 식자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페루식 메뉴를 선보이게 된다. 2000년에 처음으로 칠레에 지점을 열었는 데, 8년 후 칠레 최고의 식당으로 선정되었고, 2013년에는 전세계 식당 순위에서 14위, 중남미에서는 1위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이후 Gaston은 세계 11개국에 페루 식당을 낼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인 동시에 요리학교를 세우고, 대학과 공동으로 조리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Astrid & Gaston은 세 달 전에 전화해도 예약이 힘들 정도로 현지에서도 최고급 식당으로 인정받고 있다. 

 

Lima 부촌에 자리잡은 Astrid & Gaston 식당. 세계 11개국에 분점을 두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AstridyGastonLima/

 

Astrid&Gastón

La casa donde se reencuentran todos los sabores del Perú. Av. Paz Soldan 290, San Isidro, 47900 Peru Lima, Peru

www.facebook.com

 

이 외에도 2017년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선정된 Virgilio Martinez, 2021년 세계 최고의 여성요리사로 인정받은 Pia Leon 등은 기존의 레시피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새로운 맛과 색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페루의 음식문화를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추픽추 얘기도 해보자. 역사적으로 보면, 마추픽추의 건설시기는 스페인의 정복보다 조금 빠른 1400년대에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아주 오래된 건축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콜럼부스 이전의 잉카문명이 아직 청동기 문명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마추픽추의 주요 건축물에서 보여준 돌을 칼로 자른 듯한 솜씨는 정말 감탄할 만하다. 

 

마추픽추가 중요한 또 다른 비밀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도시를 발견하지 못한 덕분에 다행히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는 희소성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의 재건을 막기 위해 주요 건물의 돌을 떼어내서 스페인식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한 사례들이 많은 데, 마추픽추는 그런 훼손을 막았다는 것이다.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에 가보면 잉카제국의 왕궁의 돌을 가져다가 유럽식의 성당과 수도원, 정부청사를 지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멕시코시티 소깔로 광장도 마찬가지로, 아스텍 사원의 돌을 허물어, 대성당과 정부청사를 만드는 바람에 아스텍 사원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마추픽추. 늙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C8dLWjVZWvw 

 

1980년대 독일의 징기스칸이란 밴드가 부른 마추픽추 노래의 가사에도 피사로의 약탈을 피해 밀림 속 산 꼭대기에 꼭꼭 숨겨둔 덕분에 마추픽추가 페루의 보물이 되었음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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