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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석유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2)

중남미

by 쪼리아빠 2023. 3. 8.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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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는 1992년 쿠데타에 실패하였지만, 이를 기반으로 1999년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며, 베네수엘라 현대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게 된다. 차베스가 환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 유가하락으로 인한 베네수엘라 경제불황과 기존 정치세력의 미흡한 대처에 대한 서민들의 불만때문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p_uktlrwZY 

상당히 많은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영상이다. 한편, 영상에서 베네수엘라의 석유가 모두 중질유라고 하는 데, 오리노코 유역의 석유는 중질유이지만, 베네수엘라 석유의 메인인 마라카이보 지역의 석유는 품질이 좋은 경질유이다. 

 

차베스는 행운의 지도자였다. 그가 집권한 1999년부터 사망한 2013년 동안 국제유가는 2008년 금융위기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인 상승을 기록했다. 차베스는 이를 통해 '21세기형 사회주의', 즉 석유산업이라는 자본주의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을 가졌다. 그리고 유가상승은 차베스의 이런 야심을 뒷받침해주었다. 물론, 유가상승이 차베스를 도와준 것인지, 아니면 차베스가 유가상승에 관여했는 지는 별도의 주제로 다루어도 좋을 것이다. 

차베스의 집권시기는 신고유가시대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차베스 시절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 정책은 크게는 서민층의 지지 확보와 자본세력의 기반 해체에 맞춰진다. 대부분의 차베스 비판자들은 첫번째 부분에만 신경을 써서, 표를 구걸하는 포퓰리즘이 유가하락에 따른 경제불황과 겹쳐져서 정부의 무능함때문에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몰락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베네수엘라 경제 몰락의 이면에는 차베스의 사회주의 경제실험을 실패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흔들어댔던 기득권 세력과의 투쟁에서 졌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mcrIcJdsiEg 

사회주의 정부와 기득권 세력 간의 투쟁에서 서민들만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다. 

초기에 정부의 의도는 명확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기반은 석유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화이고, 정부는 이렇게 벌어들인 달러화가 기득권, 즉 자본세력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사회간접자본과 생필품 유통경로를 공영화했다. 석유회사의 국영화와 식량배급제, 공공주택 제공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보유한 달러화가 정책우선순위에 집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정환율제도와 더불어 강력한 외환통제정책을 시행했다.

 

즉, 민간부문에서 해외로부터 제품을 구매하거나 대금을 지급하기위해 중앙은행으로부터 달러를 매입하려면 그것이 꼭 필요한 자금임을 심사하는 CADIVI(외환통제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했다. 공공기관의 공식수입이나 정부가 승인한 수입 또는 용역대금의 경우에는 정부공식환율로 바꿀 수 있게 했다. 반면 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에는 암달러 시장에서 공식환율보다 두 배 이상 높은 환율로 암달러를 구매해서 대금을 지급해야 했다. 

 

공식환율로 달러를 구매할 수 있는 경우도 사안별로 한도를 두어서, 불필요한 외화유출을 막도록 했다. 예를 들어, 해외 유학생에 대한 생활비 송금, 해외여행시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역별 카드사용한도까지 세부적인 사항들도 모두 사전에 정해두는 정책이었다.

 

한편, 암달러 시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길거리의 환전소에서도 암달러 환율로 환전이 가능했고, 환치기를 통해 거액의 자금이 통장에 입금되어도 그것을 문제삼는 경우는 없었다. 시급하지 않는 분야에 대한 달러공급을 해주지 않아도 되니, 정부 입장에서는 오히려 암달러 시장을 조장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중환율구조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예를 들어보자.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데 정부가 승인해주는 사용한도는 3,000달러였다.  즉, 카드로 3,000달러를 사용하면, 나중에 카드대금 청구는 공식환율(USD1=BsF.6.30)이 적용돼서, 18,900볼리바르만 내면 된다. 그런데, 해외에서 3,000달러를 실제로 사용하는 대신 친구집에서 묵는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비용을 절약한 다음, 이를 현금으로 찾으면 어떻게 될까? 현금 3,000달러를 고스란히 암달러 환율(USD1=BsF.12.00)로 다시 볼리바르화로 환전하면 36,000볼리바르가 된다. 카드대금 18,900볼리바르를 내면, 17,100볼리바르가 남는다. 수고(?)스럽긴 하지만, 유럽여행을 한 번 다녀오면, 공식환율로는 2,700달러, 암시장환율로는 1,400달러가 생긴다는 것이다. 한 달 월급이 1,000달러, 즉 6,000볼리바르가 안되는 나라에서 여행 한 번에 세 달치 월급이 생기는 셈이다. 한 푼도 안쓰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1,000달러 정도만 사용한다고 해도 두 달치 월급은 생긴다는 얘기다. 

 

한 달에 10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어떻게 살 수 있느냐도 흥미로운 질문이다. 대부분의 기반시설은 정부에서 운영한다. TV나 기사, 유튜브에서 볼 수 있듯이, 주유소에서 휘발유 가격은 거의 공짜에 가깝다. 휘발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기와 수도 역시 거의 공짜에 가깝다. 휴대폰 요금도 그렇다. 민간이 아닌 정부가 공급하는 모든 재화는 거의 무료에 가까운 수준이다. 학교와 병원 역시 마찬가지다.(물론, 사립학교와 민간병원은 정상적인 가격에 암시장환율로 계산되기 때문에 훨씬 비싸다.) 서민들에게는 매달 식료품 패키지도 제공된다. 이런 식료품은 공공기관에서 공식환율로 수입해서 제공되기 때문에,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식료품 중에서 수입이 어려운 품목들은 현지생산에만 의존하므로, 이 경우에는 환율과는 상관없이 가격이 책정되어, 오히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도 한다. 달걀과 우유가 그런 경우이다. 다시 말해, 달걀과 우유와 같은 신선한 식품 대신 정부에서 주는 식료품 패키지로만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한다면, 한 가족의 한 달 생활비는 100달러도 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신선한 식품이 먹고싶다면, 마이애미행 비행기 표를 끊고, 미국에 가서 실컷 즐긴 다음, 한도에서 남은 돈은 현금으로 인출해서, 베네수엘라로 돌아오면 된다. 포퓰리즘이 맞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가 원래 그런 건 아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다음의 그래프는 이중환율제도가 시행되는 기간 동안 공식환율과 암시장환율의 차이를 보여주는 그래프이다. 2003년 처음 외환통제제도가 시행된 이후, 2012년 8월까지는 암시장환율이 공식환율의 2배 정도 격차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베스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암시장 환율은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차베스의 병세 악화와 사망시기(2013년 3월)를 기점으로 암시장 환율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공식환율로 달러화를 제공하던 재화와 용역의 공급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셰일가스로 인해 국제유가가 크게 하락하기도 했고,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달러화에 대한 각 경제주체들의 축재가 더욱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부정을 막기 위해서 이중 삼중의 감독체제를 구축했지만, 오히려 생선을 노리는 고양이만 늘어나는 꼴이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제품을 수입하려면 해당 제품이 생활에 꼭 필요한 제품이거나 아니면 현지생산에 꼭 필요한 원부자재임을 증명해야 Cadivi의 승인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 수입대금에 필요한 달러를 공식환율로 매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입된 제품이 신고한 서류와 일치하는 지 여부를 세관에서 검사를 받도록 했다. 세관원들은 갖은 수를 동원해서 통관을 늦추었고, 이 과정에서 뒷돈을 챙기는 일이 발생했다. 정부는 세관원의 부정을 막기 위해 가장 믿을 수 있는 집단인 군대를 통해서 세관의 검사행위를 감독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군인들도 뒷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 번 고삐가 풀린 암시장환율은 정부의 통제를 비웃듯 더 폭발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2012년 9월, 공식환율(달러당 6.3볼리바르)의 2배 수준이었던 암시장 환율(달러당 12볼리바르)은 2018년 1월, 공식환율(달러당 12볼리바르)의 10,000배(달러당 100,000볼리바르)에 달할 정도로 뛰었다. 정부는 소량의 생필품을 공식환율 가격으로 시장에 풀었지만, 이 제품들은 곧바로 시장에서 사라지고, 암시장에서 암시장 환율의 가격으로 둔갑한 채 판매되었다. 이 때가 베네수엘라의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이 뉴스에 나오게 된 시기이다. 물건의 가격이 달러로는 오히려 더 싸졌지만, 현지화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현지화로는 1,000배, 10,000배의 인상인 것으로 보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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