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 수 있냐는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안에서 느끼는 것은 많이 달랐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한 가족의 한 달 생활비는 100달러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달러 소득이 전혀 없는 가구는 매우 힘들겠지만, 달러 소득이 있는 가구라면,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길 수도 있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베네수엘라를 떠나기는 했지만, 전 가족이 떠난 경우는 드물었다. 가족 중에 한 명이 해외로 나가서 한 달에 500달러 정도만 송금해주어도 가족들을 부양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이 시기에도 정부는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해외여행객에 대한 공식환율 지원도 한도를 크게 줄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용이 가능했었다.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달러를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불사했다. 국경지대의 주유소는 항상 차량들로 가득했는 데, 하루 주유한도인 40리터를 채운 다음 국경을 건너서 콜롬비아나 브라질로 가면 차의 기름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이용하려는 행렬이었다. 콜롬비아나 브라질도 이런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환영했는 데, 귀한 석유를 값싸게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휘발유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지급하는 보급품들도 보따리를 매고 국경을 넘는 서민들과 밀수조직들을 통해 줄줄 새나가고 있었다. 아침에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에 가서 물품을 건넨 후 콜롬비아 페소화나 달러화를 받고 오후에는 생필품이나 약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기도 하였다.
어선들은 물고기를 잡는 대신 휘발유를 밀수하는 것이 일이었다. 휘발유나 디젤을 가득채우고 항구를 출발한 배들은 공해 상에서 콜롬비아나 브라질 어선을 만나서 기름을 빼서 건네주고, 대신 돈과 잡어를 받아서 귀항했다. 항구에서 실제로 고기를 잡았는 지를 검사받은 후, 고기는 그대로 바다에 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힘들게 고기를 잡기 보다는 석유 밀수가 더 큰 벌이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서민들의 소소한 밀수와 외화벌이로 인해 베네수엘라 경제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갔다. 서민들의 행위에 기득권 세력의 직접적인 개입은 없었겠지만, 정부의 달러화 통제 정책에 대해 암시장 환율제도를 이용해서 지하경제를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은 기득권 세력의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암시장 환율이 크게 요동치게 된 것도 분명 그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위의 그림은 베네수엘라의 석유이익이 어떤 식으로 분배가 되는 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본 것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큰 줄기만 그려보았기 때문에, 실제하고는 다를 수도 있지만,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을 통해 이익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서민들은 암시장에서의 판매와 국경밀수 등을 통해 소소한 이득을 챙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큰 이익을 보는 주체들은 따로 있다.
원유 메이저들은 석유생산 과정에서 유지보수, 설비투자 등의 과정에서 큰 비용을 챙기고, 권력자들은 거기에서 또 리베이트를 받아서 자기 몫을 챙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베네수엘라 국채와 회사채는 신용이 크게 떨어져서 높은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데, 이런 국채와 회사채를 사들인 사람들도 결국은 미국, 중국, 그리고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사모펀드 등을 통해 투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영기업인 PDVSA가 벌어들인 외화는 베네수엘라 정부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부예산을 할당받은 국영기업들은 이를 이용해서 해외에서 물품을 수입하는 데, 관세를 적게 내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는 실제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입하는 언더밸류를 하는 게 일반적인데, 베네수엘라의 국영기업들은 이와는 달리 오버밸류를 한다. 실제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으로 계약을 하는 것인데, 이들은 공식환율로 값싸게 달러를 조달하기 때문에, 실제 들이는 돈은 얼마되지 않고, 오버밸류의 차액은 리베이트로 해외 계좌에 묻어두기도 한다. 그리고, 국영기업의 경영자들은 권력 실세의 가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PDVSA의 미국내 자회사인 Citgo 역시 베일에 싸여있다. 미국 정부는 Citgo의 자산을 해외로 빼돌릴 수 없게 동결하는 조치를 취해서, 표면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Citgo의 경영활동에도 분명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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