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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석유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1)

중남미

by 쪼리아빠 2023. 3. 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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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석유 역사는 100년이 훌쩍 넘었다. 미국의 과학자들이 19세기부터 지리적인 분석을 통해 중생대 퇴적암 분지지형인 베네수엘라의 마라카이보 지역에 석유매장량이 많을 것으로 보고, 베네수엘라의 석유탐사를 도왔고, 덕분에 베네수엘라는 1900년대 초부터 산유국의 대열에 올랐다. 확인된 매장량으로만 보면, 베네수엘라가 세계 1위로 알려져있다. 상당량이 채굴이 어려운 오지에 정유가 쉽지않은 중질유 상태라서 상업성은 높지 않지만, 향후 기술의 발전에 따라 실질적인 상품이 될 가능성도 높다. 베네수엘라의 석유생산량은 최고점일 때 하루 300만 배럴에 도달한 적이 있으나, 최근에는 유지보수의 부족으로 100만 배럴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네수엘라 Maracaibo 지역에 위치한 유정


한편, 자동차의 왕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의 석유소비국가이다. 텍사스 지역 등 국내 유전 등에서 하루 1천만 배럴 정도의 석유를 생산하긴 하지만, 워낙에 소비량이 많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석유를 수입해야만 한다. 2015년 무렵의 통계에서는 전세계 석유생산량이 하루 9천만 배럴인데, 미국의 소비량이 2천만 배럴로 가장 높았다. 생산량 대비 부족한 나머지 1천만 배럴은 멕시코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중동으로부터 들여와야만 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셰일가스 붐일 때는 자체 생산량으로도 자급이 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셰일가스의 채굴단가가 높아서, 고유가 상황에서는 채산성이 맞지만, 유가가 60~70달러 수준일 경우에는 채산성이 낮아, 다시 원유를 수입하게 된다고 한다. 

2012년 기준 세계 석유생산량

 

2019년 기준 세계 석유소비량 Top 5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 Countries)는 말 그대로 석유수출국가기구이다. 석유가 많이 나온다고 해서 가입하는.게 아니라 수출을 해야 가입할 수 있는데, 베네수엘라는 바로 OPEC의 창립국가이다. 무려 100년 이상을 석유 생산과 수출을 통해 부를 축적해왔다. 미국시장에 대한 수출은 베네수엘라 석유공사인 PDVSA(베네수엘라석유공사. 스페인어로 "뻬떼베사"라고 읽는다.)의 자회사 Citgo를 통해 이뤄진다. PDVSA가 1986년에 인수한 Citgo는 원유수입에서부터 정유, 소매판매까지 일괄 밸류체인을 구축하면서, 한때는 미국 시장의 10%까지 점유한 적도 있다. 즉, 미국에 원유를 수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매판매까지 다 맡아서 수행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국부 수준을 보여주는 수치는 1980년 1인당 GDP이다. 우리나라의 1980년 1인당 GDP는 1,715달러(84위) 수준이었지만, 베네수엘라의 당시 1인당 GDP는 4,598달러(51위), 미국은 12,041달러(21위) 수준이었다. 베네수엘라는 1980년대 초반에는 석유파동과 고유가에 힘입어 경제호황을 누렸으나, 80년대 중반 유가하락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했다. 1989년에는 석유가격 인상을 둘러싼 민중들의 시위에 경찰과 군대가 발포하면서 'Caracazo카라카소'라는 학살도 벌어졌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이후 1992년 차베스의 쿠데타와 실패, 1998년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지면서, 1999년 사회주의 혁명 헌법의 개정으로 이어진다. 

 

흔히 베네수엘라는 포퓰리즘으로 인해 실패한 사례처럼 거론된다. 최근의 경제만 놓고보면 그럴 듯해 보인다. 특히 차베스 사후 2010년대 유가하락 시기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경제통제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이고, 그 이유 중 하나는 서민에 대한 지원정책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베네수엘라의 경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도 커서, 국제유가 변동의 영향을 그대로 고스란히 받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22년의 경우, 러-우 전쟁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회복되자,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 관련 기사는 전부 사라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가 포퓰리즘 때문에 석유 이외의 다른 산업기반에 투자하지 못했다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석유부국의 특성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차베스 전의 베네수엘라 경제는 어땠을까? 산유국의 경제는 비교적 단순하다. 원유/석유 산업은 가격 자체가 원가와는 상관없이 시장의 수급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원가 개념이 낮다. 원유 원가가 10달러든 20달러든 가격은 수급에 따라 국제시장에서 결정된다. 이로 인해 산유국들은 항상 엄청난 금액의 수익이 발생하므로,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어 항상 주변국가보다는 물가가 높게 형성된다. 인건비도 높은 수준이다보니, 석유 이외의 제품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것이 더 싸다. 이게 베네수엘라에서 석유 이외의 산업기반이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이다. 

베네수엘라의 럼과 초코렛은 세계적인 품질을 자랑하지만, 시장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서민들도 석유산업의 혜택을 받는다. 80~90년대 베네수엘라의 서민들 급여는 월 1,000달러 수준으로 주변국가들보다 높았다. 물론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정상적으로는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없었다. 대신 카라카스-마이애미 항공권은 100달러 수준이고, 승객들은 32kg 가방 3개까지 가져갈 수 있었다. 서민들은 주말마다 마이애미로 가서 생필품이나 물건을 사서 가져왔고, 그러면 비행기 요금을 뽑고도 남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소비행태에 따라 국내 유통시장에서는 급하게 구입해야 하는 제품을 더 비싸게 파는 관행이 자리잡게 되고, 소비자들은 다시 해외에서 제품을 구입해서 오는 악순환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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