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인들은 보리를 바짝 말린 다음 곱게 갈아 빵을 만들어 먹었다. 이미 이 시기에 빵을 발효시켜 구워 먹었다고 전해진다. 실수로 빵 반죽을 너무 오랫동안 발효시켰는 데,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나왔고, 맛을 보니 제법 괜찮은 술맛이 나서, 여기에 힌트를 얻은 수메르인들은 빵을 만들어 잘게 부순 다음 맥아를 넣고 물을 부어 발효시켜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메르족의 고대 유적 중에 기원전 4000년 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술과 술잔이 그려져 있는 흙판과 맥주 만드는 과정을 그려놓은 점토 판화 ‘모뉴멘트 블루(Monument Blue)'가 이를 입증해준다. 모뉴멘트 블루는 가장 오래된 맥주의 기록으로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집트 유물 중에는 맥주 제조에 관련된 것들이 제법 많다. B.C. 1500년 경에 발견된 이집트의 케나몬(Kenamon) 묘에 새겨진 벽화가 대표적이다. 이 벽화에는 항아리를 만들어 깨끗하게 씻고, 반죽을 운반하고, 빵을 잘라 넣고 체로 쳐서 건더기를 제거한 다음 발효시켜 맥주를 빚는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현세에서의 생명이 끝나면 내세에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미라의 무덤에 다섯 종류의 와인과 네 종류의 맥주를 넣었다.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들에게 맥주와 마늘을 배급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당시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높고 생산량이 적어 귀족층이 즐겨마셨고, 맥주는 일반 서민들이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이집트인들은 수메르인과 비슷하게 맥아를 빻아 반죽해 빵처럼 구운 다음 물을 타서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맥주를 만들었다. 따라서 당시 맥주는 ‘액체의 빵’이라 불렸다. 이름은 지금처럼 ‘맥주’라고 불렀겠지만 맛에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이때는 현재 맥주의 주원료인 홉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톡 쏘는 맛이 없고, 알코올 도수도 지금보다 낮고, 단맛이 강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막걸리와 비슷한 맛이 아니었을까?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시작된 맥주는 이집트와 로마 제국을 거쳐 유럽 각지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특히 영국, 독일, 덴마크, 네델란드처럼 포도를 재배하기 어렵거나 우수한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기 힘든 북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맥주는 토속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중세 유럽에서는 술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수도원에 주어졌는데, 맥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이러닉하게도, 수도원의 고결한 수사들에 의해 고대 수메르인들이 만들었던 맥주는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된다. 맥주 원료도 더 좋아지고, 만드는 방법도 발전해 지금의 맥주를 탄생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도시가 발전하고 길드 제도가 정착되는 근세로 접어들면서 맥주 만들기의 주도권은 수도원에서 시민계급으로 넘어간다. 특히, 체코의 활약이 눈부신데, 13세기 보헤미아(체코)의 왕 웬체슬라스(Wenceslas)는 맥주를 ‘고귀하고 전능한 음료’라 여기고, 교황에게 맥주 제조 금지령을 풀어줄 것을 건의했다. 덕분에 체코의 맥주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체코의 맥주는 전 유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중세의 맥주는 지금처럼 홉을 넣어 맥주를 만들기도 했지만 주로 약초나 향초의 꽃, 잎, 열매, 뿌리 등 다양한 약재를 첨가하여 향이 강한 맥주를 만들었다. 이를 ‘그루트(Grut) 맥주’라 불렀는 데, 맛이 진할수록 쉽게 중독되고, 그것을 마신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맛을 원하게 된다. 더욱 강한 향이 나고 빨리 취하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급기야는 독초를 넣어 ‘지옥의 독’이라는 그루트 맥주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점차 그루트 맥주 맛에 대한 불만과 건강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순수한 홉을 사용한 맥주를 선호하게 된다.
결국 1516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4세(Wilhelm Ⅳ)가 보리, 홉, 물만 사용해 맥주를 만들도록 하는 ‘맥주 순수령(Das Reinheitsgebot)’을 공포했다. 이러한 조치 덕분에 독일의 맥주산업은 오늘날 세계 맥주를 주도하는 나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한번 인간의 생활 속에 들어온 맥주는 발전을 멈추지 않았다. 15세기말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추운 겨울에 빚는 맛좋은 맥주를 만드는 방법이 정립되었다. 겨울에 맥주를 양조해 저온에서 장시간 발효·숙성시키는 ‘하면발효 맥주양조법’이 그것인데 이는 오늘날 전세계 맥주시장을 주도하는 양조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맥주는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유해한 미생물이 침입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유해균들은 추운 겨울에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 냉각장치가 없던 시절이나 추운 겨울을 이용한 자연 냉각에 의존해야 했는 데, 이러한 방법으로 세균이나 유해효모로 인해 술이 부패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맥주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맥주의 품질을 위해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맥주 양조기간을 9월29일부터 이듬해 4월23일까지로 엄격히 정해놓기도 했다.
산업혁명은 맥주의 역사를 또 한번 바꿔놓았다.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개발하면서 대량으로 이송할 수 있게 되었고, 물을 나르고, 맥아를 부수고, 맥즙을 내는 과정에 동력을 이용함으로써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1873년 독일의 칼 린데(Karl Linde)가 액체 암모니아를 이용한 냉동기를 발명하면서 겨울철에만 만들 수 있었던 하면발효 맥주를 일 년 내내 만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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